너는 해초마냥 나를 휘감았네 내 머리카락도 천 개의 손이 되어 너와 얽혀들었지 손가락 사이로 푸른 비늘 출렁이는데, 이끼 덮은 너의 몸은 요동치는 한 마리 물고기였네 한 욕조에 든 것처럼 비린 그늘 쏟아졌다 먹먹하게 헐떡이는 너의 아가미가 밀려들어오면 바다, 그 물비늘들이 끝내 나를 눈멀게 했다 엎질러진 그림자를 황급히 주워담으며 자꾸만 늑골 어디쯤이 흥건했는데 아아 네 속에 들어 이제는 반만 처녀인 나를 어쩌면 좋을까 눈부신 모습 뒤로 습한 그늘을 숨기는 습관은 너에게 배운 것이어서 감당하지 못할 살만 골라 사랑했던가 수맥의 흐름 속으로 콸콸 흐르고 싶은 내가 또 네가 아찔했다 고단한 뿌리를 움찔거리는 너,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치명 너의 비릿한 아가미 속에 들던 날, 이제 그만나를 모른 체하고 싶었..
피부가 거칠어져서요 모이스처 리무버로 입술을 닦다가 이빨이 사라지면 내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창문을 모두 닫느라 그렇죠 벙어리장갑을 목에 걸고 거스름돈이 부족해도 말을 안 하죠 타이머가 돌아가면 오븐에서 재가 되는 말, 타이머를 다시 맞추기에는 너무 작은 손, 힘이 없어요 당신이 나에게 실망하셨기를 바라요 두 번 세 번 타자기로 정리해도 입을 열면 사라지네요 있었다고 믿을 뿐인 나의 이야기, 가끔 내 말소리 내가 놀라요 후추나무처럼, 수줍은 후추나무처럼 철지난 바닷가에서 우둘두툴 조개껍질을 손에 쥐고 난 이불을 덮죠 아무 것도 빼앗기기 싫어서 입을 지운 채 앙금을 만들어요 팥앙금, 밤앙금, 허니 머스타드와 말린 과일도 조금 넣고 (편리하지만 죽어가는 농담도) 졸이고 졸여 멋진 잼을 만들어요 그런 게 ..
나와 다른 한 명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금도 꾸미지 않고 천천히 분리되며. 그래 구름이. 멀리에도 구름이 있었다. 두 명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구름을 보았다. 구름들은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속도. 저쪽으로. 그냥 저쪽으로 미끄러졌다. 두 명은 각각 무슨 말을 했는데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구름은. 그냥 보이는 것이고. 그저 나는 풀썩, 구름 위에 앉고 싶어하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자꾸 풀썩, 풀썩,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밤이 왔다. 나와 다른 한 명은 더 이상 나무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구름은 조금만 보였다. 나는 그것도 좋았다. 다른 한 사람은 어땠는지, 지금은 알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