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고 발음해본 오후 세 시목을 진동시키는 가벼운 떨림 같은 구름을 닮은 뭉클거림 같은 청량한 공기 같은 자작나무 숲의 아득함 같은 모슬린 옷의 설렘 같은 그리고 가벼운 눈물 같은당신은 내가 처음으로 당도한 곳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당신은 내 생에 대한 작심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내 생의 오래된 책갈피 내가 겪은 일들의 전부오늘은 당신 옆에 누운 봄날 오후 우리는 사랑을 지나 사랑으로 가고 있다네 사랑이 있나, 있기나 한 것인가.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했던 사랑은 사랑이었나. 사랑했던 적이 있기나 한가.사랑이 있나, 어쩌면 사랑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겠지.여름 한낮 참나리꽃은 섭섭한 일이 많다는 표정으로 서 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어쩌면 아직 사랑이란 걸 못해봤을 ..
너는 취중에도 허공에 곧잘 입을 맞추었고 나는 네가 놓아두는 그 궤적을 따라 밤새 걷는 걸 좋아했어.그러니까 너의 하늘을. 너의 사색을. 너의 망설임을. 너의 불면을. 너의 늦은 새벽과 이른 아침 같은 너의 모든 뒤척임을 내가 좋아했어.아무래도 괜찮을 거야. 너를 떠올릴수록 나의 오후가 조금 불안해지는 것. 그정도쯤은. 멀어지던 밤 눈이 내렸고 이내 비가 내렸다 눈도 비도 아닌 마음으로 역 앞을 서성였다기다리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날을 기다렸던가 바라다본 하늘 멀리 달 대신 앉아 있던 별 하나혼자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더 맑게 빛나던 그 별 하나의 순수가 우리가 가질 수 있던 그 밤의 전부였다 운전은 전진보다 후진이 어렵고 마음은 채움보다 비움이 어렵다는데 나는 이별보다 사랑이 더 어려웠다그래도 믿어보..
잘게 부서져 쌓이는 마음더듬어도 걸리지 않는 생각이유도 없는 텅 빈 속을 들여다보며뒤척이는내가 누군지 모르는 밤 이창윤, 불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