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너는 취중에도 허공에 곧잘 입을 맞추었고 나는 네가 놓아두는 그 궤적을 따라 밤새 걷는 걸 좋아했어.
그러니까 너의 하늘을. 너의 사색을. 너의 망설임을. 너의 불면을. 너의 늦은 새벽과 이른 아침 같은 너의 모든 뒤척임을 내가 좋아했어.
아무래도 괜찮을 거야. 너를 떠올릴수록 나의 오후가 조금 불안해지는 것. 그정도쯤은.
멀어지던 밤 눈이 내렸고 이내 비가 내렸다 눈도 비도 아닌 마음으로 역 앞을 서성였다
기다리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날을 기다렸던가 바라다본 하늘 멀리 달 대신 앉아 있던 별 하나
혼자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더 맑게 빛나던 그 별 하나의 순수가 우리가 가질 수 있던 그 밤의 전부였다
운전은 전진보다 후진이 어렵고 마음은 채움보다 비움이 어렵다는데 나는 이별보다 사랑이 더 어려웠다
그래도 믿어보자며 밤하늘 걸어두었던 당신의 눈빛도 기필코 만분의 일 확률로 추락하자 이제는 오히려 내가 나쁜 것 같았다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지 못한 새벽 그래, 당신은 추락했고 나는 추했다
사랑해서 이별한다는 말을 이해하기엔 어렸으며 사랑해서 이별한다고 말하기엔 너무 어른이었다
내가 데리러 갈게요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은 오지 않았고 아무리 헤매도 찾을 수 없는 오지에 내가 있었다는 걸 자각할 즈음
나의 품엔 너무 많은 온기가 돌고 있었다
나는 막차 시간만 되면 당신을 여행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리고 오늘, 그걸 조금 지워보려다 모르게 잠이 들었어요.
창틈으로 젖은 새벽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간밤에 하늘도 조금 울었나 봐요.
나는 참 많았어요. 당신을 미워하지 못해서 나를 너무 미워했던 밤. 그리고 찾아온 새벽.
그래도 당신이 남긴 소중한 흔적이라 구태여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보면,
오지 않는 마음을 자꾸 마중 나가는 건, 오지 않을 마음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자주 여행하고 마중 나가는 그 겨울, 그 거리. 거기 한 번쯤 우리가 있었다고 나는 말해도 괜찮을까요.
가끔은 당신도 일부러 그 거리를 충분히 엇갈리게 다녀갔다고.
창 비친 햇살에 선잠 쏟아지던 날
문득 멀리서 작은 손 흔들어 보이며 서둘러 나를 떠나간 사람
어찌 가느냐고 물어도 아주 아니라며 뒷모습 그림자조차 허락하지 않고 간 사람
그저 기다리면 언젠가 그래도 한 번은 올 것 같아 세월이 나를 놓칠 때까지 당신 이름 붙들고 외마디로 식어갔습니다
허나, 당신이 만지고 간 바람은 아직도 따스하게 남아 당신으로의 먼 여행을 내게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립습니다 그러나 두렵습니다
당신 없이도 당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내가
너의 가슴 깊은 곳 유랑하는 외로움 기어코 한 떨기 수선화로 싹 틔울 때
그렇게 한 줌 햇살의 따뜻함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느껴질 때
다만 고개를 들어보렴 나, 거기 있을 테니
내가 기억하는 지난날을 네가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그날의 부신 햇살 더 오래 따뜻하고 그날의 밝은 별 더 맑게 빛나도록
오늘 밤은 네 앞으로 남겨진 질문들에 모두 마침표를 놓아주어야지
이대로 봄이 조금 더 늦어지면 그때는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모든 기억이 나를 아프게 하는데
담장 균열마다 번져있는 겨울을 봄바람이 도려내기 전에 눈 및으로 새겨진 당신이라는 얼룩을 봄비가 모두 씻어가기 전에
조금 늦어서 미안해 강변을 건너는 저 노을의 속도로 충분히 느슨해진 그 따뜻한 온도로 당신에게 외투 한 번 벗어 건넬 수 있을까요
너무 많은 걱정과 너무 많은 불안과 너무 많은 불면으로 너른 길가 한복판에서도 쉽게 정체되어 버리는 나지만
일렁이는 느릅나무 새로 점멸하는 간판들의 네온사인 불빛처럼 어제도 오늘도 같은 질문으로만 되돌아가는 천성도 이제 조금은 그만둘 수 있을까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을 리가 없는데 어떤 이유로 나에게 더 머물러주고 있는 걸까요 겨울은
가까운 길을 두고도 참 멀리만 돌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잡을수록 달아나는 마음을 고쳐 잡으려 더는 자신을 허물지 않으려 합니다
내 모든 새벽의 수식어를 내어주어도 잠들지 못했던 우리는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당신이란 시간의 잔재가 내일의 나를 완성해줄 것을 믿겠습니다
그래도 남겨진 질문은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너무 많은 날이 달콤했고 또 위태로웠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모한 여행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여행은 끝났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부디, 건강한 상처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무해한 사람 (0) | 2019.06.23 |
---|---|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최갑수 (0) | 2018.05.22 |
이창윤, 불변 (0) | 2018.03.20 |
최유수, 사랑의 몽타주 (0) | 2018.01.20 |
최유수, 사랑의 몽타주 (0) | 2018.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