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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넌 왜 말이 없니?

p29 2017. 11. 17. 21:24

피부가 거칠어져서요 모이스처 리무버로 입술을 닦다가 이빨이 사라지면 내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창문을 모두 닫느라 그렇죠 벙어리장갑을 목에 걸고 거스름돈이 부족해도 말을 안 하죠 타이머가 돌아가면 오븐에서 재가 되는 말, 타이머를 다시 맞추기에는 너무 작은 손, 힘이 없어요 당신이 나에게 실망하셨기를 바라요 두 번 세 번 타자기로 정리해도 입을 열면 사라지네요 있었다고 믿을 뿐인 나의 이야기, 가끔 내 말소리 내가 놀라요 후추나무처럼, 수줍은 후추나무처럼


철지난 바닷가에서 우둘두툴 조개껍질을 손에 쥐고 난 이불을 덮죠 아무 것도 빼앗기기 싫어서 입을 지운 채 앙금을 만들어요 팥앙금, 밤앙금, 허니 머스타드와 말린 과일도 조금 넣고 (편리하지만 죽어가는 농담도) 졸이고 졸여 멋진 잼을 만들어요 그런 게 내게 있다고 사람들을 속이기로 해요 미니 증기선을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고기를 못 잡아요 산호보석도 없어요 난 자주 흔들리지만, 살 수 있고, 없지만, 이제는 너무 많이 지워졌지만, 사실은 이빨이 바퀴를 달고 종일 움직여서 그래요 침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귀찮은 거예요.


박상수, 넌 왜 말이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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