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당신이라는 호칭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돌려받은 책장 사이에서 만난, 속눈썹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건네준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건네받은 사람온 곳을 모르므로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마음일 때깜박임의 습관을 잊고 초승달로 누운 지난봄을 펼치면 주문 같은 단어에 밑줄이 있고이미 증오인 새봄을 펼쳐도 속눈썹 하나 누워 있을 뿐책장을 넘기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출처 모를 기억만 떠나는 방법을 잊었다 아지랑이의 착란을 걷다눈에 든 꽃가루를 호― 하고 불어주던 당신의 입김후두둑, 떨어지던 단추 그리고 한 잎의 속눈썹언제 헤어진 줄 모르는 것들에게는 수소문이 없다벌써 늦게 알았거나 이미 일찍 몰랐으므로 혼자의 꽃놀이에 다래끼를 ..
Love letter 그런 거 있지. 정말 별 게 아닌데 별거처럼 버릴 수 없던 것들. 새로 사면 되는데도 이거여야만 한다고 고집하던 거 있잖아. 누군가에겐 징크스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행운의 부적이라 여겨지는 존재들. 뭐랄까. 하나 남은 담배는 태우면 안 된다고 말하거나 매일 하는 팔찌인데도 하루의 운세를 이끌어줬다고 믿게 되는 거. 상황에 사물을 대입해서 철석같이 믿거나 아니면 그 결정을 한 나를 대신해 신랄하게 욕할 수 있었던 것들. . 너는 그런 사람이었어. 내가 우연히 잡은 행운인데도 네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내 실수로 망쳐버린 일이었지만 네가 내 옆이 아닌 현실 때문이라 생각했어. 너는 내 징크스, 행운의 부적,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뭐냐고 물으면 네가 먼저 나올 정..
상자를 만들어요. 십 년 됐어요. 당신에게 주려고요. 상자는 잔디밭에 있어요. 흔들리지 않는 잔디 풀 옆에. 혼자 흔들리는 잔디 풀 옆에. 아니, 흩어지는 구름 아래. 매애애애 하나로 뭉쳐져 똑같은 모양이 되는 양 떼들 아래. 아니, 올라가는 층계. 아니, 내려가는 층계. 그곳에 상자는 없어요. 아름다운 잔디밭엔 잔디가 없어요. 안녕, 엄마. 안녕, 동생아. 이제 자러 갈 시간이야. 다 버렸어요. 새 장난감들로 채웠어요. 아니, 아니, 상자 말구요. 상자는 말이 없어요. 당신은 다 알고 있지요? 나는 칠월의 무성한 포도 넝쿨, 상자에 묶인 어여쁜 빨강 리본을 그리워해요. 상자엔 빨갛고 기다란 싸구려 노끈. 노끈 아래엔 물고기 시체. 혹시 울어요? 물 속 같이? 종이가 금방 찢어질 것 같아요. 상자를 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