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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만들어요. 십 년 됐어요. 당신에게 주려고요.
상자는 잔디밭에 있어요. 흔들리지 않는 잔디 풀 옆에. 혼자 흔들리는 잔디 풀 옆에. 아니, 흩어지는 구름 아래. 매애애애 하나로 뭉쳐져 똑같은 모양이 되는 양 떼들 아래. 아니, 올라가는 층계. 아니, 내려가는 층계. 그곳에 상자는 없어요.
아름다운 잔디밭엔 잔디가 없어요. 안녕, 엄마. 안녕, 동생아. 이제 자러 갈 시간이야. 다 버렸어요. 새 장난감들로 채웠어요. 아니, 아니, 상자 말구요. 상자는 말이 없어요.
당신은 다 알고 있지요? 나는 칠월의 무성한 포도 넝쿨, 상자에 묶인 어여쁜 빨강 리본을 그리워해요. 상자엔 빨갛고 기다란 싸구려 노끈. 노끈 아래엔 물고기 시체. 혹시 울어요? 물 속 같이?
종이가 금방 찢어질 것 같아요. 상자를 만들어요. 십 년 후에요. 당신에게 주려고요. 오직 당신을 위해 찢길 상자 하나를. 당신도 알지요? 십 년 전에.
종이상자,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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