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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왈츠, 박서영

p29 2017. 7. 17. 18:31

당신을 사랑할 때 그 불안이 내겐 평화였다. 달빛 알레르기에 걸려 온몸이 아픈 평화였다. 당신과 싸울 때 그 싸움이 내겐 평화였다. 산산조각 나버린 심장. 달은 그 파편 중의 일부다. 오늘밤 달은 나를 만나러 오는 당신의 얼굴 같고. 마음을 열려고 애쓰는 사람 같고. 마음을 닫으려고 애쓰는 당신 같기도 해. 밥을 떠 넣는 당신의 입이 하품하는 것처럼 보인 날에는 키스와 하품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였지. 우리는 다른 계절로 이주한 토끼처럼 추웠지만 털가죽을 벗겨 서로의 몸을 덮어주진 않았다. 내가 울면 두 손을 가만히 무릎에 올려놓고 침묵하던 토끼.


당신이 화를 낼 때 그 목소리가 내겐 평화였다. 달빛은 꽃의 구덩이 속으로 쏟아진다. 꽃가루는 시간의 구덩이가 밀어 올리는 기억이다. 내 얼굴을 뒤덮고 있는 꽃가루. 그림자여, 조금만 더 멀리 떨어져서 따라와 줄래? 오늘은 달을 안고 빙글빙글 돌고 싶구나. 돌멩이 하나를 안고 춤추고 싶구나. 그림자도 없이.


달의왈츠,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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