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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독서, 오병량

p29 2017. 7. 17. 18:40

방 안을 살피는 일이

잠자리를 들추는 일이 아니기를

책을 살피는 일이 문장을 소독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눈의 검은자가

흰자위의 독백을 이해할 때

꿈이 찾는 조용한 가치들


선명한 여름인데 우리

찢긴 페이지처럼 갈피가 없어

너는 말없이 울고 빗물에 젖은 새처럼 흐느끼고

하마터면 내 눈에 쏟아질 것 같은 널 안고

팔베개를 해주었지

책을 보았는데, 꿈은

커다란 구렁이를 목에 휘감고 자는 일이래

그럼 무섭지 않아요?

너와 나 우리 모두가 그런 거라면

그렇지 않다고 나는 말해주었지

용기가 난 듯, 너는 넘어진 책장을 일으켜 세운

지난 밤 꿈 얘기를 했는데, 불길한 눈을 가진

계집애를 보았다고 분명

어려움이 닥칠 거라며, 그새 잠이 들고 말지만


아득하고 따스한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네가 말하는 걸

나는 분명 들었으면서 잠이 들고 싶었지

내 옆에서, 나는 너와 만났고

꿈이면 어때, 널 끌어안은 내가

열린 입술로 다시 어두운 구멍으로 깊이 파묻힌대도

질식해도 좋아! 오독은 치유의 병이니까,

나는 자신이 들었던 거야


꿈이 무엇일까, 생각해서

참으로 오래된 직업 같다 여겨지는 날이었어

점자를 만들다 맹인이 된 한 남자를 떠올리면

눈이 새긴 다른 눈자위를 더듬다

눈이 먼 남자가 있다고 믿게 되면 목각은

눈보다 마음이 먼저 세운 일 같아

남몰래 우는 날보다 우는지도 모르게 자던 일이

더욱 꿈만 같은 너였지


꿈이 꿈을 덮는 일이 하루가

하루를 접는 일이 마치 구렁이의 머리를 물거나

꼬리를 먹고서 천천히 소화시키는 직업이라면

혀를 내밀어 똬리를 트는 몸짓은

잠결에 두고 간 누군가의 포옹일지도 모르겠다고 가만

가만히 눈을 맞추며 읽고 또 앓아야 했어

꿈이라는 독서를


왜? 너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슬픈 고백은

꿈에서만 하기로

그러니 그 밤, 책을 꼭 안고 잠들면

너는 얇고 보드랍고

어떻게든 내 것 같았지


꿈의 독서, 오병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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