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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생활의 발견

p29 2017. 9. 25. 11:31

치웠어요 우리요 우리 말입니다 오늘 할당된 노역을 다 끝냈다는 말씀이죠 작업장은 넓고 가도 가도 작업장 연금관리공단에서 나온 직원이 손가락질을 합니다

 

저렇게 죽게 됩니다 그는 우리를 벗어난 돼지를 가리켰어요

 

바지를 벗으려는 게 아니라 흘러내려가는 걸 잡고있는 겁니다 개개는 게 아니고요 꾸미거나 뭘 삽입할 여유도 없습니다 허리띠를 지급해주세요 목을 매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감독관의 목을 조르지 않겠습니다

 

줄 서서 죽 받고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비웠습니다 보세요 피도 건져내지 않았지요 내일은 폐에 모레는 피에 도전할 겁니다 이제 편식하지 않으려고요 멱따고 내장 빼내고 식판을 씻고 변기도 닦았습니다 나는 커다란 솥에 이빨을 빡빡 문지릅니다

 

우리는 진지한 고백과 호소에 지루해졌고 우리는 치워도 다시 불결해지지만 특히 가족 이야기는 양칫물처럼 삼켜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낯선 걸 좋아하지 않아 혼잣말로 했던 말을 하고 또 합니다

 

하수구 뚜껑 같은 달이 뜨면 단체로 체조를 하고 운동장을 몇 바뀌 돕니다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멈추고 사이렌이 울리면 우리는 냅다 뜁니다 어떤 이는 대피실로 어떤 이는 지하 벙커 고문실로 또 어떤 이는 실험실이나 소독실로 우리는 각자의 우리에서 다 함께 잠들고 있습니다

 

폭풍우 부는 밤 어떤 이는 누군가의 창문을 두드립니다 방 하나 주세요 우리는 우리에서 나온 사람에게 줄 방이 없어서 잠든 척합니다 그는 사랑이라는 터무니없는 링거에 매달린 목숨일지 모릅니다 그 튜브에서 줄줄 새는 액체 때문에 어제도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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