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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떠나왔던 길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걸 깨달을 때. 모든 게 아득해 보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삶은 참혹하게 물이 빠져 버린 댐 가장자리의 붉은 지층이다.
도저히 기억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이 한눈에 드러나는 그 아득함. 한때는 뿌리였다가, 한때는 뼈였다가, 또 한때는 흙이었다가 이제는 지층이 되어 버린 것들, 그것들이 모두 아득하다.
예쁘장한 계단 어디에선가 사랑을 부풀리기도 했고, 사랑이 떠나면 체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온다고 믿었던 사랑은 없었다. 떠나면 그뿐, 사랑은 늘 황혼처럼 멀었다.
병든 것들은 늘 그랬다. 쉽게 칼날 같았고 쉽게 울었고 쉽게 무너졌다. 이미 병들었는데 또 무엇이 아팠을까. 병든 것들은 죽고 다시 오지 않았다. 병든 것들은 차오르는 물 속에서 죽음 이외에 또 무엇을 살았을까.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마른 날. 떠나온 길들이 아득했던 날 만난 붉은 지층. 왜 나는 떠나버린 것들이 모두 지층이 된다는 걸 몰랐을까.
지층의 황혼,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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